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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용미리 묘역지 예술의 방주 콩세유 미술관 - 산양의 작가 정미애 애니메이션 음반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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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차를 탈곡기로 벼를 털거나 우걱우걱 씹을 것처럼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이다. 벽제에서 가까운 용미리 공원묘지 부근에서 붉은 생명을 전시하고 있는 콩세유 미술관’을 찾았다. 미술관에는 숱한 주검들이, 아니 생명들이 흙으로 돌아간 지구 위에서 기어이 살아내고 있는고독한 산양, 생명이 활달한 소나무, 생명의 빛을 따라가는 해바라기를 그려온 화가 한 사람이 있었다. 산양의 화가, 소나무의 화가, 해바라기의 화가 정미애 작가다.

파안대소로 우리를 맞은 그는 곧 그림에 얽힌 사연을 풀어내며 직접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었다. 그의 해설과 함께 갤러리의 작품을 쭉 따라가며 감상해보았다. 생명이 죽어서 돌아가는 흙, 다시 생명이 태어나는 흙의 빛을 담은 화폭에 해바라기, 소나무, 산양이 말을 건네오고 있다.

생각해보면 기존의 여인연작에서도 그는 흙빛을 담은 동그란 얼굴, 작지만 수직으로 세상을 보지 않고 키가 작아도 너른 지평을 일람할 수 있는, 고개 꺾은 여인을 그렸다. 그때부터 지금의 산양연작에 이르기까지 어떤 이야기가 정미애 작가의 붓을 움직였을까. 그가 그려내는 산양은 캔버스 위에서 우리의 마음에 어떤 이야기를 건네는 것일까. 정미애 작가의 거침없는 화법은 장강처럼 흘러온 그의 삶과 예술을 실타래를 펼쳐보였다. 무엇보다 그가 그려온 산양을 캐릭터로 한 음악이 애니메이션 곡으로 출반되기에 그 얘기도 들어보기로 했다.

(편집자 주)

김종섭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서 산양이라는 동물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다른 동물이지만 가장 먼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여우가 떠오르더라고요. 작중 여우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독, 쓸쓸함을 상징합니다. 이와 비유해서 양을 생각해보면 양은 훨씬 온순한 동물입니다. 먼저 가려고 욕심내지 않고, 안내해줄 이를 기다려주는 순한 이미지죠. 그래서 성경에서도 목자와 양의 알레고리가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정미애 작가의 작품에서의 산양은 어떤 의미인가요?

정미애 말씀하신 것처럼 성경에서 나오는 양은 순종적인 동물로 제물로 바쳐지기도 하곤 하지요. 우리나라의 산양은 한국 토종입니다. 2만 년 전부터 서식해왔다고 해요. 현재는 멸종위기 1급 동물로 개체 수가 1천 마리 정도입니다. 일제강점기, 무분별하게 사냥하던 시절이었는데 용케 사냥꾼을 피해 살아남았어요. 산양은 그만큼 생명,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한 거죠.

산양은 개인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와 깊은 관련이 있어요. 제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거의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까지 아버지가 늘 해 주셨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소나무 숲에 데려가서 항상 옛날이야기를 해 주셨거든요. ‘어린 아이가 길을 잃은 채 잠들었다가 눈을 떠 보니 어떤 집에 와 있더라, 그리고 그 아이가 씨름 대회에서 1등도 하고 노래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훌륭하게 자라난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행복하게 살았다는 단순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해주시면 어린 저는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하고 묻곤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됐죠. 이야기의 주인공인 어린 아이가 바로 아버지 당신이라는 것을 중학교 1학년 때 알았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아버지와 함께 소나무 숲에서 산양을 보곤 했는데 어린 시절 아버지가 마치 산양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야기 속 소년도 산양도 모두 강인하고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하니까요.

김종섭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네요. 아버님께서 당신의 이야기를 어린 딸에게 동화처럼 들려주셨다는 것도 참 아름답고요.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아버님께서 정말 씨름도 잘하시고 노래도 잘하셨나요?

정미애 . 그야말로 예인이셨어요. 자식이 여럿이면 그중 가장 신경쓰이는 자식이 있다고들 하잖아요. 보통 몸이 아픈 자식이 그렇죠. 저희 6남매 중 제가 그런 아이였습니다. 1.8kg도 채 안 되는 미숙아로 태어나 살 가능성이 희박했습니다. 늘 생존을 위해 바등바등하면서 성장했는데 그래서인지 아버지가 저를 유독 챙기셨어요. 그런 아버지가 72세에 별세하셨을 때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제가 아직 30대인데, 한창 그림을 그리고 있을 뿐 아직 화가로서 성공하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돌아가셨거든요.

마지막 순간에도 아버지는 제게 꿈을 버리지 말라고 말씀하셨어요. 이후 아버지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로 결심하고 2017년부터 제작을 시작했죠. 어릴 적 소나무 숲에서 아버지가 들려주신 그 이야기, 아버지 당신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거죠. 그림 작업도 산양을 줄곧 그린 것이 그때부터입니다.

세상에 태어나 첫 울음을 터트렸을 때부터 그는 힘겨운 싸움으로 살아남아야만 했다. 아마 누군가의 지극한 사랑이 없었다면, 아니 그 지극한 사랑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그런 사랑을 준 사람은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목수 중에서도 나무에 대한 감각이 가장 뛰어난 산판이었던 아버지는 딸이 중학교를 나올 때까지 함께 소나무 숲을 거닐며 하나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주었다. 버려진 아이도 삶을 살아나갔듯이 작은 몸치라도 얼마든 그 아이처럼, 산양처럼 잘 살 수 있다는 걸 아프고 어린 딸에게 끊임없이 주입 시킨 것이다.

오로지 생명을 지키기 위해 버티며 살아온 유년시절과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 그 이야기는 캔버스를 넘어 음악으로 태어난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애니메이션으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다.

김종섭 애니메이션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주세요. 미술관에 들어오면서 입구에 서 있는 산양 캐릭터를 보았는데 그 산양이 미미인가요?

정미애 네 맞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으로 제작한 캐릭터입니다. 미미는 아름다운 미()와 산양 미()를 조합해서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김종섭 아버지의 인생 이야기를 스토리화했다니 더욱 의미가 각별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이야기가 미미의 이야기로 옮겨간 과정이 궁금합니다. 어떤 공통점이 있으며 어떤 부분에서 각색이 이루어졌나요?

정미애 아버지는 어릴 때 실제 길을 잃고 가족과 영영 헤어지셨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지요. 그래서 모든 기억을 잃었는데 이름 석 자만은 잊지 않으셨어요. 그 기억을 다시 찾아 나가는 과정에서 좋은 부모님, 새로운 가족을 만났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고요.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난 후에 잃어버린 가족을 찾았습니다. 저는 이런 일이 우연이나 인위적인 노력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삶과 삶을 연결해주는 천륜, 숙명이 있다고 생각해요. 미미의 이야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사셨던 그 삶, 그 이야기를 미미도 그대로 가지고 있어요. 소나무 숲에서 길을 잃고 잠에서 혼자 깨어난 미미가 가족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애니메이션으로 그려낸 거죠. 그 과정에서 사랑, 용기, , 꿈을 얻고 용서를 배워나갑니다. 애니메이션인 만큼 너무 무겁지 않게 다듬었어요.

김종섭 미미가 1대 미미, 2대 미미, 3대 미미 이렇게 쭉 대를 이어간다고 돼 있는데 이런 설정을 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정미애 그 이유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게 된 동기와 맞닿아 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행복하게 더 오래 사셨더라면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산양처럼 말이죠. 산양은 어려운 상황이 찾아와도 이겨내면서 2만 년이나 그 명맥을 유지했으니까요. 근데 점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1대 미미가 있으면 그다음 미미가 있고, 2대 미미가 있으면 또 그다음 미미가 있고. 한 사람의 삶과 이야기는 그런 식으로 쭉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김종섭 애니메이션 형식은 어떻게 계획이 되어있죠? 다부작 애니메이션, 시즌 개념으로 제작하는 애니메이션, 영화 등등 형식에 따라 유통의 방식도 달라질 텐데요.

정미애 처음에는 방송국에 콘택해, 방송용으로 제작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방송용 제작보다 영화로 제작하는 게 맞다고 판단해 현재 음원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5년 동안 제작하면서 계속 준비해나가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전체 줄거리부터 세부적인 내용, 대사 등 제가 모두 썼습니다. 제 아버지의 이야기고 제 것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 손에서 나온 결과물은 전부 제가 의도한 것과는 조금씩 다르더라고요.

애니메이션 삽입곡의 가사도 직접 작시했습니다.음악은 엄덕환이라는 젊은 작곡가가 해주었지요. 이 분과 만나게 된 이야기도 특별합니다. 어느날 이분이 찾아와서 제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알고보니 작곡가였습니다. 그때 그림속 산양을 주제로 작곡해줄 수 있는지 넌지시 의뢰했습니다. 3일 만에 한 곡을 만들어 왔습니다. 나중에는 애니메이션 OST를 제안했습니다. 2주에 한 번씩 미팅을 가지면서 제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맞추어 나가다 보니 1년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10곡을 만들었지요.

캔버스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새 생명을 얻어 거듭난 산양 미미는 그야말로 정미애 작가의 자식 같은 존재다. 그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풀어나갈 캐릭터로, 그가 그토록 강한 애착이 있는 생명력 그 자체를 상징하는 아이콘이기도 하다. 정미애 작가의 작품에서 스스로 메시지를 읽어낸 남다른 감수성의 작곡가를 만난 일도 마치 그가 이야기하는 숙명과도 같아 보인다. 정 작가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는 작곡가의 음악과 정 작가가 직접 쓴 가사는 한 몸으로 어우러져 10편의 동화같이 아름다운 노래가 되었다.

갤러리 1층 카페에 들어서면 전면에 거대한 그림이 방문자를 맞이한다. 해바라기와 산양, 달과 소나무, 색감은 시선을 사로잡으면서 뚜렷하게 외치는 듯 그 존재감을 떨친다. 하나의 그림 안에 이토록 많은 이야기가, 이토록 깊은 세상이 담겨 있는 것에 놀람도 잠시, 정미애 작가가 꾸려 놓은 방주, 콩세유 미술관에 대해 궁금해졌다. 이토록 놀라운 작품을 품고 있는 미술관에는 또 어떤 계획과 철학이 담겨 있는 것일까?

김종섭 콩세유라는 미술관 이름이 참 독특합니다. 프랑스어의 ‘conseil’는 조언, 상담, 충고의 뜻이지요. 근데 여기에 자가 결합한 형태입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정미애 프랑스어 ‘conseil’꽁세이이렇게 발음됩니다. 뒤에 (you)’라는 의미를 담아 붙였습니다. ‘너에게 조언을 한다, 너를 도와준다하는 의미가 되지요.

김종섭 누구에게, 어떤 것을 도와준다는 의미인가요?

정미애 신진 작가들, 활동이 어려운 작가들이 전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림의 방향은 어떤지 많이 물어옵니다. 그러면 제가 조언을 해 주고 있습니다. 여태까지 5년 동안 꾸준히 해오고 있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말이 있습니다. 논어에 나오는 말로 말을 꺼내기 전에 실천을 먼저 하고 그다음에 말을 해라.’입니다. 제가 먼저 해보았으니까 조언해줄 수 있죠.

김종섭 그렇게 젊은 작가들에게 조언해주고 방향을 잡아주기까지 작가님은 어떤 길을 걸어오셨나요?

정미애 저도 정말 힘들게 그림 공부를 해왔습니다. 평탄하지만은 않았던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정말 어렸을 때부터 붓을 잡고 놀았습니다. 그림은 선천적인 것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후천적인 노력으로는 안 되는 게 분명히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할 겁니다. 버스로 10시간 걸려 인사동까지 가서 아버지가 물감을 사다 주시고, 직접 데려도 가서 그림 구경을 시켜주시기도 했어요.

어릴 때 그렇게 해서 알게 된 분한테 지금까지 40년 동안 물감을 받고 있어요. 대학을 다니던 22살 때부터 작가 활동을 시작했거든요. 23살에 미국 뉴저지의 갤러리에 작품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프랑스에서 공부도 하는 동안에도 미국, 프랑스 등 다양한 곳에서 전시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다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본격적으로 입지를 다지게 된 건 2005여인연작입니다.

김종섭 콩세유 미술관의 위치에 대해서도 꼭 여쭤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곳 파주 용미리는 미술관을 세우고자 할 때 그리 추천할 만한 장소는 아니지 않나요? 게다가 묘역지 부근이라는 점도 그렇고요.

정미애 정미애는 뼛속까지 아티스트다!’ 이런 말을 정말 자주 듣습니다. 제 어떤 부분을 보고 그렇게들 말씀하시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아요. 타고났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떠올리고 머릿속에 그려본 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몸이 힘들어요. 남들이 거부감을 느끼거나, 생각하지 않는 것을 시도하고 창조하는 것에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묘지는 일반 토지와 다릅니다. 묘지에는 꽃도 심고 가장 좋은 나무를 심잖아요. 그리고 얼마나 잘 가꾸어 놓는지 모릅니다. 공기도 참 좋고요.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는 언젠가 저 묘지속에 다 들어갑니다. 저어해야 할 대상이 아니거든요. 우리 아버지도 묘지로 가셨고요. 제가 성공하기 시작한 여인의 얼굴은 바로 흙색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흙으로 돌아가잖아요. 그래서 용미리가 좋습니다. 삶을 깨우쳐주기도 하지만 죽음과 함께 하니까요.

단순히 독특하기만 한 개성이 아니라 삶과 천륜으로 이어진 부모와 자식, 생명에 대한 사랑과 응원이 지금의 정미애 작가를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정미애 작가의 시선은 범상한 이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생명이 죽어 묻히는 땅에서 오히려 약동하는 생명의 기운과 가능성을 읽고, 예술이 전무한 곳을 찾아 예술의 방주를 짓는다. 어린 시절, 누군가의 뜨거운 사랑으로 삶을 지탱해온 그이기에 다른 이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고 베푸는 일에도 강한 사명감이 있는 그다. 갤러리의 이름 콩세유부터가 그림을 꿈꾸는 당신을 돕겠다는 타인지향형명칭이다.

그의 예술 활동은 캔버스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정 작가의 생명력은 그보다 훨씬 넓은 바다로 자꾸만 떨쳐나가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영화, 캐릭터, 작사, 음악까지 분야를 가릴 것 없이 약진해 가는 그의 생명력은 벌써 또 다른 방주, 또 다른 예술의 터를 꿈꾸고 있다. 용미리, 인사동 콩세유에 이어 제주도에도 미미랜드가 머잖아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8월의 제작발표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관객을 만날 미미 애니메이션, 동화 같은 이야기를 담은 따뜻한 감성의 OST, 제주도 문화예술을 선도해 갈 미미랜드까지. 지금까지의 파란만장한 정미애 작가의 삶과 활동을 보면 쉴 법도 한데 그는 지칠 줄 모르고 붓을 쥐고, 꿈을 이뤄가고, 다시 새로운 꿈을 꾼다. 앞으로의 그의 활동이 참으로 기대된다.

글 김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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