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老畫伯이 가져온 고려의 拈華微笑…강록사 고려불화재현전
기름으로 그린 그림이건만 짙은 연꽃 향이 풍기는 듯하다. 자신이 그린 불화들 사이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노화백의 얼굴엔 불상의 모습이 어려 겹친다.
종교에 무지한 기자조차 조금 경건한 마음이 드는 갤러리의 분위기다.
원로 서양화가 강록사 화백의 고려불화재현전이 서울 인사동 마루센터에서 열렸다.
오는 14일부터는 경기도 파주 콩세유 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겨 5월 23일까지 열린다. 〈시사오늘〉이 지난 9일 인사동 콩세유갤러리를 찾아 강 화백을 만났다.
강록사 화백은 지난 9일 고려불화 재현전과 관련, “제가 2003년에 이 작품들을 처음 발표했을 땐 섬세한 유화 작업으로 불화를 어떻게 그리냐고 했었다”라며 “제가 최초인데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라고 전했다.
"고려 불화가 참 아름다운데 다 외국에 있어서 후손들이 볼 수 없잖아요.
그래서 내가 50점을 그려 남겨두면, 후손들이 그걸 보면서라도 고려불화가 아름답다는 걸 느끼지 않을까 해서 시작했지요."
강 화백은 원래 서양화가다. 150회가 넘는 단체전과 초대전, 4회의 개인전 이력을 가진 미술계의 거인이다. 그런 그가 내걸고 있는 것은 고려불화를 재현한 28점이다.
고려불화는 국내엔 13점뿐이고, 100점 이상이 일본에 있다.
또 미국 등에 흩어져 있다. 강 화백은 이런 고려 불화를 유화(油畫)로 재현해냈다.
"제가 2003년에 이 작품들을 처음 발표했을 땐 하나의 사건이었죠. 섬세한 유화 작업으로 불화를 어떻게 그리냐고 했었거든요.
제가 최초인데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아요." 보통 수채로 그려지는 불화와 달리, 유화로 그린 강 화백의 고려불화는 무게감과 깊은 느낌을 준다는 게 강 화백의 설명이다.
유화를 택한 이유에 대해 강 화백은 "제가 전공이 서양화니까 유화를 시도해 봤지요.
가끔 거부감을 갖는 분들도 있어요. 한데 불화라는 게 무엇을 그리느냐, 그림 내용이 무엇이냐가 중요하지 뭘 가지고 그렸느냐가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라고 반문하며 웃었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섬세한 작업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작업을 위해 강 화백은 붓털을 4~5개만 남기고 잘라낸 붓을 썼다는 후문이다. "원래 제가 섬세한 작업을 잘 했어요"라고 빙그레 웃는 강 화백이지만, 실제론 하루에 10시간씩, 작품당 길게는 40여 일이 걸린 대작들이다.
강 화백이 "하루 온종일 걸려도 고개를 들고 보면 표가 안 났다"라고 하니 이 작업에 들인 공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만 할 따름이다.
감탄하며 보고 있자니 강 화백이 다시 덧붙이는 말이 있다. "불화든, 혹은 기독교의 성화든 종교와 관련된 작업을 하는 건 보통 정신으로는 못합니다.
미지의 소명이 일을 하게 이끄는 거죠. 그러다 보면 신비한 일도 종종 겪습니다." 그러면서 강 화백은 짤막한 경험담을 들려줬다.
"저도 이 불화들을 그리면서 신기한 일을 많이 겪었습니다. 한 번은 얼굴을 그리는데 도저히 자비심이 담긴 표정이 안 나오는 겁니다.
아무리 다시 그려도 안 돼요. 낙담해 있다가 한 친구가 '기도를 올리고 해야지'라고 조언해 줬습니다.
그래서 아차 싶어 그렇게 했더니 단번에 그려지는 겁니다. 지금도 보시면 얼굴에 한 번 고친 자국이 없어요.
그렇게 그려진 작품들입니다." 강 화백의 설명을 들으며 함께 아미타 구존, 지장보살 등의 작품을 둘러봤다.
그중에서 가장 애정이 간다는 수월관음도 앞에 서서 사진을 남겼다. 강 화백은 수월관음도 앞에서 자신의 수작을 올려다보며 인터뷰를 맺었다.
"가끔 탱화 중에서도 음산하고 기분이 좋지 않게 그려진 것들이 있습니다.
고려불화는 그런 것들과는 전혀 달라요.
종교를 몰라도 아름답고, 거부감이 전혀 생기지 않죠.
가끔은 그냥 제가 그린 이 불화들에 둘러싸여서 여생을 살다 가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모셔갈 분이 있을 것 같아요. 내가 내일모레 아흔입니다. 작품들을 그냥 두고 떠나기보다는, 몇몇은 임자가 나타나서 후손들에게 '이것이 고려 불화'라고 보여줬으면 좋겠어요.